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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이 낳은 시, 천진한 아이 같은 
 유안진 16번째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
 

 유안진(71)은 시의 분만실이다.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이후 숱한 시가 그 분만실에서 탄생했다. 모성(母性)의 시학이랄까. 그는 갓난 아이를 다루는 어머니마냥 시어를 매만지고, 아이를 기르듯 시 세계를 확장시켜왔다.
 그 아이를 유안진의 ‘시아(詩兒)’라고 부르자. 시아는 올해로 세상에 나온 지 47년째다.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유안진의 시아에게 늙음의 징후는 없다.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꽃중년’의 시랄까.
 ‘눈꼬리와 입꼬리가/저절로/10시 10분이다가/9시 15분이다가/8시 20분이다/7시 25분으로 바뀌는 순서/를, 따라서 나 지금 몇 시일까?’(얼굴시계)
 유안진의 신작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문예중앙)에서 고른 시다. 70대 초반의 시인이 맞나. 16번째로 펴낸 이 시집엔 이처럼 천진한 아이의 상상력이 빛나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모성의 기운이 지배적인 편이다. 군데군데 빛나는 천진함을 어머니의 넓은 품이 안아주고 있는 형상이다.
 “모성이 바탕이 안 되면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성이란 모든 것을 덮어주려는 마음이죠. 문학도 마찬가지에요. 문학의 본령이란 위로와 용서죠. 사람들의 상처를 달래고 어루만지는 게 문학의 역할이죠.”
 그가 모성을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게 된 건 어머니의 삶을 새기며 살았던 체험 덕분이다. 경북 안동에서 세 자매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를 끝내 버렸고, 딸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꼿꼿했다. 일평생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떠나간 남편의 어머니를 섬겼다. 팍팍한 삶이지만 기도만큼은 게을리 않았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강인하고 부드러운 모성이 시를 쓰게 했다. 이를테면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이토록 뭉클하게 재현된다. 
‘어둠에 저항하는 한 송이 작은 꽃/30촉 알전구 아래에서/바늘 귀를 더듬던 어머니//세상으로 뚫린 유일한 숨구멍으로/의식주를 실어 나르던 낙타의 바늘에게.’(바늘에게 바치다)
 바늘 귀만한 구멍으로만 숨쉴 수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데도 어머니는 어찌 힘들다 한 마디를 할 줄 모를까. 의식주를 실어 나르던 그 어머니의 삶이 어린 딸을 시인으로 만들었고, 교육심리학자(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명예교수)로 삶을 꽃피우게 했다.
 “어릴 때는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고, 자라서는 어머니를 부담스러워 했어요. 90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게 많아요. 저도 한 사람의 어머니로 살고 있지만, 내 어머니의 삶을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죠. 그런 어머니 덕분에 이렇게 시를 쓰고 있으니….”
 그러니까 모성은 유안진의 절절한 시론이다. 그래서 ‘져주면 편하다고/지는 게 이기는 거라던 어머니’(시인론, 지며 살아야)를 마치 시인의 표상처럼 여긴다.
 “시인은 져야 합니다. 져줘야 이기는 게 시거든요. 지는 건 진실이고 이기는 건 사실이죠. 역사(사실)는 승자의 기록이고 문학(진실)은 패자의 기록이잖아요. 진실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문학이죠.”
 이번 시집에는 검정의 이미지가 넘실댄다. ‘검은 에너지를 충전받다’ ‘검은 재즈’ ‘백색 어둠’ 등이 눈에 띈다. 그는 “모성은 검은색이다. 검정색은 어떤 얼룩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품어서 쉬게 한다. 내 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안진의 분만실은 어쩌면 암실일까. 아픔도 상처도 다 빨아들이는 컴컴한 암실. 고통은 삼켜내고, 생명은 솟구치는 그곳에서 유안진의 시가 잉태된다. 그 컴컴한 포근함이 뭉클하다. <중앙일보 2012. 7. 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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