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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학계에선 가까운 장래에 100세까지의 기대 수명을 장담한다. 각종 언론 매체에선 장수 관련 새로운 건강 정보도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한결 같다. 질병예방 전략이나, 건강 식단의 소개, 활기차고 멋진 노년 생활을 보내기 위한 지혜로운 생활 방법의 안내 등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나. 하여 농·어촌 지역 장수 노인들의 소소한 생활 스토리까지 소개되고 있다. 노인 인구가 점증함에, 뒤따르는 사회적 제 문제에 대해 우려를 하는 식자들도 있지만, 노인 관련 편의 상품에 대한 요구도 많아질 터이니 실버산업의 유망을 점치기도 한다. 

요즘엔 장·노년층에서의 성형 수술 바람도 불고 있다. 눈썹문신, 처진 눈을 위한 쌍꺼풀 수술, 목주름 성형, 안면 부위 보톡스 주사, 검버섯 지우기 등. 그 메뉴도 보다 다양해 졌다. 의학기술의 발전 탓이다. 여력만 되면 젊게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뜻대로 모양 있게 가꿀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뭐가 잘못됐다는 힐난의 뜻은 없다. 성형 수술이나 미용에 대한 관심은 그 만큼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해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경우이긴 하지만 혹여 &lsquo젊음 중독증&rsquo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들은 신체 건강이나 외모에 대해 강한 집착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 저변엔 나이 듦이란 &lsquo자연&rsquo의 한 과정에서, 즉 노화 그 자체에서 도피하려는 심리도 엿보여지는 것이다.

장년기를 지나면서, 보통 사람들은 나이 듦에 대한 몇 가지의 이런 감상들을 느껴봄직 했으리라.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때 문득 쓸쓸한 연민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 탄력을 잃어 쭈글쭈글해진 얼굴, 늘어난 뱃살, 둔해진 몸동작, 뭉텅 빠져버린 머리칼로 허전해진 머리, 성 능력은 물론 성욕 자체도 현저히 감퇴된 것이다. 이러다가 슬금슬금 미래를 도둑맞는 거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아직 내 마음은 청춘인 것 같은데, 아니야 마음에도 조금씩 녹이 슬어가는 것이야 라고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다시 생각의 반전이다. 이 무슨 감정인가? 「현실」을 봐라. 나이 들어가도 얼마든 팽팽하게, 팔팔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됐는데&hellip&hellip. 젊게 살아야 돼 하며 스스로 독려한다. 아무렴, 젊게! 속으로, 이런 주문을 되뇌기도 하는 것이다. 

막연하나마 이러한 심리적 근심도 예견된다. 보통 중년을 지내보며, 끝없이 펼쳐지리라 생각했던 미래가 느닷없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것 아닌가하는 당혹감을 적이 느낄 때가 있다. 인생을 갈무리해야 되는 시점은 과연 어디쯤 인가. 물론 되돌아 갈 시간은 없다. 그렇다고 이에 절망감을 느낀다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야망을 펼친다는 게 힘에 겨울 거란 예감이다. 이제부턴 가치 없는 관계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되겠다는 마음도 든다.

그런가 하면 아, 나의 시절은 다 지나가고 말았구나. 더 이상 이 사회에선 나를 필요치 않아. 이젠 변두리 인간으로 머물러야 되는 입장 아닌가하고 남모르게 회한에 잠기기도 할 것이다. 비록 조기 은퇴를 했지만 몸과 마음이 아직 멀쩡하고 생생한데 뭘 어떻게 하고 사는 게 좋은가. 그 해답을 모르는 채 남겨두고, 그 실존적 방황의 한 가운데서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든, 중년의 시기에 다소 무기력한 이런 심리적 상황의 저변에는 그 공통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젊음 중독증이란 사실 임상적으로 특별히 고려해야 될 어떤 특별한 &lsquo증상&rsquo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나이 듦에 어느 새 도둑처럼 슬며시 도래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남달리 크다는 문제다. 또 나이 듦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 그 반영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그렇다는 얘기다. 

젊음 중독증의 구체적 예를 들면, 이런 모양일 것이다. 이제껏 얼굴 성형 수술을 8차례 하여, 마치 얼굴 모양이 외계인인양, 반질반질하게 들 떠 보이는 여인. 운동에 탐닉되어 누가 봐도 운동 중독이 의심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건강과 유희성 활동으로만 보내는 사람. 자신의 보신만을 위하는 생활 스타일이거나 너무도 이기적이거나, 폐쇄적인 성향의 사람. 종교에 탐닉하다시피 하여, 영생을 염원하려는 신념에 허덕이는 사람. 나이를 잊은 채 대책 없이 아직도 창창한 미래만을 꿈꾸며, 자꾸 일을 벌이는 사람 등일 것이다.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 알코올이나 색정에의 탐닉도 유사 현상이다. 이에 관해 나는 그런 생활 스타일 자체에 무슨 시비를 따질 요량도 없겠지만, 그 모든 게 잘못된 거라고 굳이 강변하려는 뜻도 없다. 인간 행동에는 다 나름대로 그 의미가 있겠으니, 스스로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한 그런 행위를 놓고, 뭐라 간섭할 이유도 물론 없는 바다.

다만 이러한 성격의 문제는 순전히 자각의 문제임을 환기시킬 뿐이다. 문제에 대해 깊이 자각을 하면 스스로가 그만큼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자유로워지면 그만큼 선택이나 행위 결정의 폭은 넓어질 터이니, 그만큼 삶의 질이 개선될 것임은 주지하는 바다.

아인슈타인은 &lsquo시간이 단순한 의식의 환영이라면, 일직선상의 시간은 형이상학적 허구 그 자체&rsquo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시간의 허구성이란, 예컨대 우리가 지난 일을 얘기할 때, 수 십 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바로 몇 일전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음을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해석이다. 부연하면 과거의 시간이나 과거의 일은 분명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속했던 일체의 이미지들은 뇌 속에 어떤 정보(기억)로만 입력돼 있을 뿐이다. 미래 역시 유사한 개념이다. 미래란 &lsquo뇌&rsquo속에서만 환(illusion)으로 살아있다 봄이 그럴듯한 해석이다. 누가 미래를 본 사람 있던가? 아무도 보지 못했음이다. 미래란 우리의 근심이나 어떤 희망 속에 남아 있는, 혹은 예측되는 &lsquo가정&rsquo이라 봄이 보다 정확한 말일 게다. 그러므로 이런 도출이 가능하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 시점에선 분명 그 실체가 없는 거다. 흔히 사람들이 과거나 미래를 말하는데, 실상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있는「현재」속에, 오로지 그 현재 속에서만 녹아 있는 기억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이다. 때문에 오로지 지금 여기, 이 순간만이 실존하고 있는 것이고, 과거, 미래라 하는 것은 결코 현존의 실체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옛 성현들은 한결같이 이 &lsquo영원한 현재&rsquo 속에 진정한 나의 존재가 있다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갈파를 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 미래 걱정에서 벗어난 삶이야말로 참살이라 보는 것이다. 

다른 예, 영성(靈性)이란 말도 그러하다. &lsquo내가 과거엔 영성이 있었어.&rsquo 또는 &lsquo지금은 모르겠으나 앞으로 열심히 기도하거나, 수행을 하면 영성을 깨달을지 모르겠어.&rsquo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 뜻은 알겠으나, 사실 그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 말이다. 영성의 문제, 역시 &lsquo지금&rsquo 내 안에 혹은 이 우주 안에 충만해 있음을 즉시로 &lsquo느끼고 있음&rsquo만이 적절한 표현인 것이다. 그것은 물론 객관적 실체도 아니어서 더욱 그러하다. 오로지 현재만이 실존한다. 지금 이 순간만의 자신만이 진정한 자신이란 거다. 이런 안목에서 좀 더 깊이 궁구해보면 현재의 자신은 나이가 몇이든, 지금 이 순간만이 모든 게 가능하고 모든 게 열려있을 뿐인 것이다. 만일 이러한 앎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과거에도,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는 열린 마음의 가능성을 직감적으로 예감케 된다. 이게 바로 건강한 정신이다. 정신 건강의 으뜸 조건이기도 하다.

젊음 중독증의 배경 원인인, 죽음이나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그처럼 현재의식에 대한 자각으로 (다른 말로, 의식의 확대라 불러도 무방함) 근본적 극복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 자각은 존재의 본래적 속성이기도 한, &lsquo사랑&rsquo으로의 자연스런 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이 듦 그 자체에 대한 자연스런 초월의식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어둠으로 경험 했던 과거의 드라마가 있거든 그것은 하나의 꿈으로도 인지되기에, 담담히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날그날의 삶의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며, 에고(자아)의 활동에 협동하는 자신(Self)을 체험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려고 나서기보다, 어떤 모습으로 남겠다는 자세도 성숙한 인간의 태도이지 싶다. 오직 현재 &lsquo내가 있음&rsquo에 대한 자각은 모든 사물에 대한 평등의식이 저절로 발아됨이다. 또 현존의식의 알아차림에는 겸손, 허술함, 정직, 있는 그대로 드러냄, 판단하지 않기, 용서, 자비 같은 태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현존 의식」에 충분히 자각된 사람이라면,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시간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은 없을 터다. 그런 자리에선 사랑이라는 말이 -그런 말에 얽매이거나, 집착하거나, 개념화 하는 일 없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움트게 됨을 앎이다. 요컨대 우리 안에 내재된 신성(神性)의 현현이란 것도 현존의식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는 귀결이다. 

-「성령은 시간에 대한 필요를 없애는 것이 시간의 목적이라고 해석한다.」(「기적수업」)

-「살아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지닌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이레니우스, 2세기 리용의 주교)

-「그게 인생이야.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근심일랑 조금도 가슴에 담아두지 마. 바로 지금 이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면서 사는 거야. 미래는 되어가는 대로 두면 돼」(우 조티카 사야도, 미얀마의 고명한 스님 )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한의 순간이며, 영원한 지금이다 」(퀘이커 교육자, 토마스 켈리) 

-「기억과 미래 계획은 보통 때처럼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당시에 진행되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lsquo일부로서만&rsquo 경험해야 합니다...그 순간에 벌어지는 다른 사건들은 모두 구름과 마찬가지로 그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영성 정신과 의사, 제랄드 메이)

-「이 굉장한 드러남(지금 &lsquo내가 있다&rsquo는 느낌에만 온전히 몰입하는 명상을 한 뒤, 생길 수 있는 현상. 필자 해석) 은 생각이나 개념 없이 일어나므로, 마음속에는 개념화를 중단시킨 무한한 침묵이 있다. 목격하고 있는 그것과 목격되는 그것은 정체가 동일하다. 관찰자는 녹아 버리고 동등하게 관찰 그 자체가 된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힘이 무한하지만 절묘하게 부드러운 현존(presence)에 의해 일체가 된다.」(데이비드 호킨스) 

호킨스 박사의 언급엔 그 해석에 다소 어려움이 있겠다. &lsquo나&rsquo라고 하는 주체는 사실 허구이고, 그런 까닭에 그 &lsquo나&rsquo가 보는 사물의 해석에도 허구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충실한 현존의식이 가능하다면, 그 &lsquo나&rsquo가 껍질일 뿐임을 명확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일정 명상의 상태에서, 관찰자가 녹아내린다는 말을 그리 했던 것이다. 다른 말로는 초의식이랄까, 영적 각성 상태랄까, 그런 관점에서는 주체와 타자는 절대 평등의 입장인 것이다. 그 타자에는 물론 꽃이나 바위, 나무, 책상 같은 사물도 포함될 수 있다. 또 거기에는 오로지 관찰하고 있는 순수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의식에선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된다. 이런 의식을 &lsquo참나&rsquo라 부를 수도 있겠다. - 필자 해석.

                             <MD저널 201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