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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라/

오두범 교수의 전국 시문 기행(3) 한국민속촌

 

시간 여행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가능하다. 향토 사극, 영화를 보거나 옛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은 어느새 그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간다. 다소 상업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재현하고 시간을 되돌이키는 방법 중에 ‘민속촌’, ‘역사 재현 단지’…등등이 있겠다.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지하철이나 승용차를 이용하여 한 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유명한 ‘한국민속촌’이 있다. 이 시설에 대하여 우선 관광객들을 끌어들여서 돈을 벌기 위한 상업 시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구태어 부인하려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저런 이야기는 일단 접어 두고 필자 개인적으로는 한국 민속촌을 시간의 흐름을 제법 효과적으로 붙들어 놓고 있다는 면에서 가끔은 찾아가 즐길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시설의 긍정적인 측면을 즐기기로 한 이상 민속촌에 들러 내가 조선시대의 한 마을에 들어간 느낌으로 마을 길을 걸어 올라가 본다. 팔도 초가집, 양반 촌 와가, 옛 관아 건물, 장터 국밥집, 동동주 주막집… 다 재미 있다. 특히 내가 재미 있어 하는 것은 국밥집과 동동주 주막집이다. 값이 제법 비싼 국밥 한 그릇과 동동주 한 사발을 쟁반에 받쳐 들고 마당 끝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 앉으면 마치 옛날 주막집 툇마루에 걸터 앉은 느낌이 든다.

사실 나의 민속촌 탐방의 하일라이트는 장터거리 주막이 아니다. 민속촌 초창기에 민속촌에 대하여 한낱 심드렁한 느낌 밖에 없을 때 이곳에 와서 필자가 한 껏 인상 깊게 느낀 시설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민속촌 장터거리 옆에 있는 물레방아 간이다. 물론 공이도 없이 바퀴만 돌아가는 물레방아지만 어쨌든 제법 운치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이미테이션 물레방아만 있다면 나는 그 물레방아에 각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물레방아 옆에는 나의 대학 때 은사이신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 선생님의 “물레방아” 시비(詩碑)가 있다. 민속촌에 처음 왔을 때 여기에 물레방아 시비가 있는 줄도 몰랐고, 또 여기에 와서 연포 선생의 “물레방아” 시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실은 그전에는 선생님의 시를 읽어 본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여기에 와서 선생님의 시 “물레방아”를 접했을 때 나의 충격과 감동은 실로 컸다.

연포 이하윤 선생님은 1930년대를 대표했던 시문학파 시인으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등과 함께 유미주의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시문학』지 동인이었다. 일제 때 일본 법정대학(法政大學)에 유학하였으며 귀국하여 기자 생활도 하였다. 해방후 성균관대 교수 등을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셨다.

필자가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니 학과 선배들이 학과 소개차 학과 자랑을 이것 저것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학과 교수님 자랑을 하는데 우리 과에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메모광”이라는 글을 쓰신 이하윤 교수님도 계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 나는 감탄하였다. 아! 교과서에 실린 글을 쓰신 분이 우리 과 교수님이라니!

2학년부터는 전공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이하윤 교수님의 수업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다. 나는 교수님의 수업에서 “메모광”에 쓰신 대로 두툼한 메모 수첩을 가지고 강의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교수님 강의에서 메모는 없었다. 교수님은 주로 문학개론, 문학사 등을 강의 하셨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프랑스 낭만주의-상징주의 시인들의 시세계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문학사적 흐름을 섭렵하셨다.

그러나 그 무렵, 시국은 한일회담 반대 데모 등으로 대학가가 들끓을 때라 비상계엄령, 위수령 등으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 학기 내내 휴교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우리 이하윤 교수님은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시느라 더욱 휴강을 많이 하시는 편이었다. 교수님은 언론인 출신이라 그런지 한량끼도 좀 있으셨고 교수 생활 말년에는 꼼꼼한 메모광의 면모보다는 말 술도 마다 않는 애주왕의 면모를 보일 때가 많았다. 학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술이 거나하게 오르면 학생들을 상대로 짖꿎은 주정도 가끔 하셨다.  

그렇게 해서 그럭저럭 나의 대학 시절은 지나갔고 이하윤 교수님은 우리 졸업 무렵까지 학교에 계시다가 정년퇴직 후에 오래 장수하시지는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 못난 제자는 선생님에 관한 소식만 전전으로 들었을 뿐 졸업 후 한 번도 선생님을 뵌 적이 없고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했다. 그리고 나서 1980년대쯤 언젠가 한국민속촌에서 선생님의 물레방아 시비를 보았을 때 선생님을 뵙기라도 한 듯이 반가웠다.

내가 주로 선생님의 교수생활 말년에 뵌 선생님은 소탈한 노신사였지 샤프한 언어 연금술사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투박한 석류 껍질을 깨면 보석 같이 달콤한 석류알이 쏟아져 나오듯이 그 분의 마음 속에 이런 아름다운 시어가 감추어져 있었다니! “물레방아” 시 때문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헐렁한 시설로 보였던 민속촌은 선생님의 시비 때문에 한 껏 품격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물 네 방 아 

                

이하윤(1906~1974)

 

끝 업시 도라가는 물네방아 박휘에

한 닙식 한 닙식 이내 추억을 걸면

물 속에 잠겻다 나왓다 돌 때

한 업는 뭇 기억이 닙닙히 나붓네

 

박휘는 끝 업시 돌며 소리치는데

맘 속은 지나간 옛날을 찾아가

눈물과 한숨만 지어서 줍니다

……………………………………

 

나만흔 방아직이 머리는 흰데

힘 업는 視線은 무엇을 찾는지

확속이다 굉이소리 찌을적 마다

 

요란히 소리 내며 물은 흐른다

 

1918년 이천공립보통학교, 1923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도쿄 호세이대학[] 예과, 1929년 법문학부 문학과를 수료하였다.

전공은 영문학이나 대학 재학 중에 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1929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1929∼1930)·동구여자상업학교(1942∼1945)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1930∼1932)·『동아일보』(1937∼1940)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의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중앙문화협회를 창설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혜화전문학교(1945), 동국대학교·성균관대학교(1947∼1950)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겸 교양학부장으로 있다가 작고하였다. 1956년 유네스코아시아회의(일본 도쿄)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10여 차례나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민주일보』·『서울신문』의 논설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공직을 역임하였다. 문학 활동은 1926년『시대일보()』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 『해외문학』 동인 및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31년 ‘극예술()’ 동인, 1932년 ‘문학()’ 동인으로도 활약하였다. 그의 시는 대체로 애조를 띤 민요조의 서정시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39년에 발간된 그의 첫 시집 『물레방아』는 시상이나 리듬의 단조로움으로 인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같은 서정시 계열의 시인인 김소월()이나 김영랑()의 그늘에 묻혀버린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의 문학사적 공헌은 창작시보다는 외국시의 번역 소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역시집 『실향()의 화원()』(1933)은 이 방면에서 1930년대 문학 활동을 대표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불란서시선(西)』(, 1954) 등 역시집과 『현대서정시선()』(, 1939)·『현대국문학정수()』(, 1946)·『현대한국시집()』(, 1955) 등의 편저가 있다.

 

참고문헌

  • 『연포이하윤선생화갑기념논문집』(김윤식 외, 진수당, 1966)
  • 「나의 문단회고」(이하윤, 『신천지』, 1950.6.)
  • 「시문학파의 기수: 이하윤의 시」(조병춘, 『한국현대시사』, 집문당, 1980)
  • 「한국근대시번역의 문제점: 김소운과 이하윤의 경우」(김윤식, 『현대문학』, 1983.1.)

    [네이버 지식백과] 이하윤 [異河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