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翠園 金榮義(社49) 동문의 수필집
   ‘비취빛 삶이 되고 싶어’
    잊지 못할 젊은 그 날의 증언

<前畧>
 나는 어머니를 도와 피난 보따리를 풀자마자, 대학으로 달려가 보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다다음 날이었다. 언제 빨갱이 조직에 가담하고 있었는지, 어디서 미리 준비한 것인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정문에 나와 섰던 그 동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등교하는 선․후배들을 붙들어 전쟁터로 끌고 갔고, 민청, 여성동맨 등으로 강제 가입시키는 무서운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교수님들은 다 어떻게 되셨을까? 우리 학과의 선․후배들은 또 어떻게 살아냈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살아 있는 친구들의 모습에 우린 서로 반가움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며 다시 태어난 듯한 자신들의 삶을 헛되이 할 수는 없다고 누구나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남녀 학도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한결같은 심정으로 머리를 맞대며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숙의(熟議)하고 또 숙의했다.
 “우리 이대로 있을 수 있겠어? 뭐든 할 일을 찾아야지 않겠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 말이야.”
 진정 모두가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애국충정을 억누르질 못했다. 이리저리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우리의 힘으로 보람된 일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그룹의 누군가가 결연한 얼굴빛으로 달려왔다.
 “국방부 정훈국에 대학생 의용군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붙었어.”
 “무엇을 하는 일인데?”
 “정훈 선발대로 북한에 파견할 대상자라는 거야, 어때? 우리 한 번 해 볼만하지 않을까?”
 당시, UN군과 우리 국군은 평양을 향해 진군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국은 날로 안정되어 갔으나 대학가는 어수선한 가운데 개강이란 엄두도 못낼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남학생이 인민군에 끌려가 생사를 모르거나 아니면 국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이었으며, 많은 교수들도 나름대로 거취가 불분명한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썰렁한 빈 교정 모퉁이에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면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의논이 분분했다.
 이윽고 이른바 ‘페스탈로치 클럽’이라 일컫던 우리 일행들이 중심이 되어 이에 뜻을 함께 하는 동지를 규합하게 된 것이다.
 을지로 6가에 있던 구(舊) 사범대학(師範大學)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교수님 사택 방 하나를 집합소로 제공받았다. 우리의 뜻을 가상히 여기신 우리 대학 생물과의 최기철 교수님께서 당신 자택을 내어주시며 격려의 지원을 해 주신 거다.
 그 어려운 수복 시절에 얼마나 따뜻한 배려를 하셨기에 그 뒷바라지를 자청하셨겠는가. 그 선생님의 인품과 제자 사랑의 정을 보답할 길이 없다.
 그 일의 진행은 단체적 통일이 요구되는 내용이며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 늦도록 서류 준비와 대책 협의에 몰두하였고 각자가 자원 입대함을 분명히 하는 동의서에 서명한 후, 최종 확정된 명단을 정훈국에 제출하였다. 명칭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도의용군 정훈공작대’로 등재되었다. 때는 벌써 10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유혹을 받거나 강요당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각자의 애국충정과 불타는 동지애로 뭉쳐져 추진된 것이며 함께 참여하기로 확정된 동지들은 총 23명이었다.
 ‘베스탈로치 클럽’의 아버지라 불리던 이영덕(교육과 5회) 선배를 비롯하여 우리 모임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영덕(교육과 5회), 정원식(교육과 5회), 한용기(교육과 6회), 이효걸(사회과 5회), 유문기(교육과 7회), 황종건(교육과 5회), 민정애(교육과 6회-여), 이상희(사회과 5회-여), 김옥선(교육과 6회-여), 이창선(체육과 7회), 장태환(수학과 7회), 임봉국(사회과 6회), 민병림(체육과 7회-여), 김영의(사회과 6회), 김○○(체육과 7회-여), 황응연(교육과 7회), 허범(교육과 5회), 전찬화(교육과 7회), 서상돈(과미상 7회), 이명원(과미상 7회) (*그 외 3명은 생각이 나지 않음) 이상이었다.
 아울러 우리가 그 길을 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그 당시 국방부 정훈국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인 이선근 박사가 국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의 결심이 더 쉽게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학자이신 그 선생님이 군복을 입으시고 앞장서신 모습에 존경과 신뢰감을 느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대학 지성들이 솔선해서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고 우리들의 애국심에 불을 댕기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학도의용군 정훈공작대 대장으로서 문리대 정외과 4년인 손도심 씨가 활동하고 있었다.
 10월 23~24일경, 드디어 우리 정훈공작대의 발대식이 거행되고 그곳에서 모든 행동 지침이 교육되고 시달되었다. 발대식은 을지로 부근에 있던 국방부 정훈국 건물의 옥상에서 치러졌다. 군복과 군모, 그리고 완장과 종군증이 지급되어 복장을 갖춘 학도 대원들은 대학별로 줄지어 대열을 정비하고 이선근 국장에게 처음으로 군대식 거수경례를 붙였다. 끝으로 손을 들고 충성의 맹세를 엄숙하게 다지는 선서를 했다.
 그날 발대식에 참여한 대학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약 열 개가 좀 넘는 것 같았으며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든다면, 먼저 우리 사범대학이 맨 끝자리에 섰고 그 옆에 상과대학 그리고 문리대와 법대가 혼합된 소대 편성으로 서울대학교가 한쪽에 몰려 정렬했었다. 그 옆으로 단국대학, 국학대학과 지방대학들도 그 발대식에 함께 한 것 같으나, 여학생들은 우리 사범대학에만 끼어 있었고 타대학은 모두 남학생들만 있었다.
 우리 정훈공작대는 국군 정훈 병력에 앞서 선발대로 북한 수복지역에 파견되는 것이며, 그 지역은 대학별로 할당되어 행선지를 그 해당 도내의 중심 도시를 근거로 하여 선무 활동을 하도록 짜여 있었다. 우리에게는 황해도가 배정되었고 우리 사범대학 소대의 책임자는 이효걸 선배가 맡게 되었다. 발대식을 마치고 나서 출동할 일시가 하달될 때까지 우리는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정훈 선무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챙기고 만들며 만전을 기하느라고 정신없이 뛰었다.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전원이 최 교수님 댁에 집합했다. 마지막 점검이 필요했고 행동 통일을 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다 긴 편지를 적어 놓고 동생들 저녁 식사를 도와준 다음 생활필수품을 넣은 배낭을 메고서는 집을 떠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길은 도저히 떠날 수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가슴이 착잡하고 눈물이 맥없이 줄줄 흘러 내렸다. 이미 10월도 며칠 남지 않은 때이니 아침 저녁 선뜻선뜻 바람이 찼다.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길이었으나 우리는 주주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주어진 목숨을 나라 위해 바치려는 굳은 각오였기에 돌아올 기약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다. 최 교수님의 격려와 당부를 뒤로 하고 하나로 뜨겁게 결집된 우리는 출동의 새벽을 맞았다. <後畧>

※ 이 글은 金榮義 동문이 6.25 당시에 겪었던 體驗의 글로써 ‘학도의 용군’에 함께 참여 활동했던 李相姬(社48) 동문의 體驗記와 같은 맥락의 내용이다.

◎ 비취빛 삶이 되고 싶어 - 金榮義 著
 2011년 7월 25일 한누리미디어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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